문화 / Culture

[전고운의 부귀영화] 자니

가운데 부분으로 잘라서 올려주세요_.jpg

일러스트_ 이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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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대답 없겠지만, 문자를 보내본다. 늘 피곤에 눌려 사는 자고 있을 친구에게.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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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깨어 있을 땐 사람을 찾지 않더니, 꼭 다 잔다 싶을 때 그렇게 사람이 고프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시간으로 따지면 미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 새벽 세 시는 난처하기 짝이 없는 시간. 배도 고프고, 사람도 고픈 시간. 둘 중에 하나만 고파도 현기증이 나는데, 둘 다 고플 때는 위기 상황이다. 가끔 지나치게 사람이 고픈 오늘 같은 밤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샅샅이 뒤져서 깨어 있는 사람을 찾아낸 후 이런 문자를 보내고 싶다.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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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자는 사람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내고 싶다.


‘왜 이렇게들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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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해도 이 시간에 깨어있는 친구들이 와글와글했는데, 아니 어쩌다 새벽 3시에 깨어 있는 사람이 전멸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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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아니.
엑스한테 보내려다 간신히 참고 너한테 보낸다
그 새끼한테 연락하면 넌 사람도 아님.
만날래?
콜. 택시 탄다.
우리 완전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 이영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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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보통 사랑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들끓었던 시기였고, 밤늦게까지 고민을 하거나 흥분 상태라 몇 시든 어디에 있든 달려가서 만났다. 24시간 커피숍에 앉아 못생겨질 때까지 수다를 떨다가 동이 트고 눈이 반 이상 감겨서야 겨우 헤어지곤 했다. 실연당해 술 마시고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달려가 하소연을 들어주기도 했고, 한 개의 아르바이트로는 모자라 두 탕 세 탕 일을 하던 친구의 가게에 가서 퇴근 시간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새벽 3시가 피크였던 우리들은 그새 다 어디 갔지? 회사 갔니? 육아 하니? 날 잊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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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나의 ‘자니’ 역사는 오래됐다. 스무 살부터 그 짓거리를 해왔는데, 그땐 이게 알아주는 농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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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안 자는 사람이 수두룩 빽빽 했고, 헤어진 애인에게 보내는 미련의 산물로 쓰이던 대사라서 앙증맞은 두 글자 그 자체가 블랙코미디였다. 하지만 유부 생활을 하게 된 이후 단어에서 성적인 코드가 쏙 빠져버리기도 했지만, 그냥 뭘 더 따질 것 없이 다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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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가 각본, 감독, 제작을 한 1억 예산의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게 되어버려서 쓸데없이 많은 돈을 벌게 된다면, 조용한 어느 마을에 하얀색 두부 같은 큰 호텔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할 때는 늘 다 자는 게 서러웠던 오래된 마음을 담아 그 호텔 이름을 ‘다잔다 호텔’로 지을 것이다. 덤으로 경영 방침 중 하나로 모든 국민에게 무료 숙박권 10일치를 나눠줄 것인데, 돈 없는데 미칠 것 같을 때 여기 와서 쉬어가라는 의미에서 나눠주는 선물을 전 국민에게 쏴 버리는 것이다. 통 크게.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묘비명은 ‘자니’로 끝낼 것이다. 멋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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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에 얽힌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몇 장도 더 쓸 수 있지만 참는다. 이렇게 나는 ‘자니’를 사랑한다. 두 글자만으로도 나에게는 시 같은 그 말. 아무도 답해줄 수 없어 페이소스까지 담겨버린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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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글을 썼으면 <해리포터> 정도는 썼을 텐데, 아쉽게도 글을 쓸 생각은 안 하고 음식과 사람 생각만 그렇게 한다. 그러다 술을 마신다. 음식도 사람도 다 지울 수 있게. 그러다 어떤 날에는 일기를 쓴다. 그렇게 몰래 베갯잇을 적시듯 쓴 일기를 어쩌다 연재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모두가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N번방 사건으로 분노하고 있는 이 시기에 이런 사소한 일기를 연재하고 있는 것이 몹시 송구스럽지만, 그저 조용히 교신을 하고 싶어 시작했던 연재였다. 혹시나 나같이 새벽에 배고프고, 사람 고플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싶었다. 여기 새벽에 깨어있는 인간 있다고. 이 일기들이 그 증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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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문자 하나로 도원결의를 맺었던 친구들은 연락이 끊겼거나 자고 있다. 나 혼자만 밤에 남겨져 아쉽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로운 내가 밤을 지키는 셈 치고, 다들 부디 꿀잠 자서 피곤하거나 아프지 않기를 바라본다. 아니 모두가 아프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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