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Book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The Fall of Constantinople)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The Fall of Constantinople)

 

스티븐 런치만 지음, 이순호 옮김, 갈라파고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동로마 제국(혹은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1453년이다. 보통, 한 국가의 패망은 국가 원수가 죽거나 수도가 적군에게 넘어가는 날이라고 한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셀주크 투르크가 약해진 틈을 타서 15세기경부터 소아시아 지역에 등장한 이른바 "투르크(혹자는 돌궐이라고도 한다)"계의 제국이며 현재 터키 공화국의 전신이다.

 

시이저가 암살당한 이후로, 기반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로마 공화정은 아우구스투스가 인도하는 대로 "제 1 시민"이 지배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말만 공화정이지 실질적으로 제정이 시작되었다. 초기에 아우구스트스 혈통의 황제들이 통치하던 시기가 네로를 끝으로 막을 내리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그 다음에 5현제가 등장하여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혹자는 5현제 시기가 로마의 멸망을 조금 늦추었을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북방에서는 끊임없이 게르만족이 침입해 오고 내부적으로는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있던 상황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지금의 이스탄불로 옮기면서 도시 이름을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바꾸기까지 했다. 하지만 방대한 제국은 양쪽으로 나뉘었고 서로마제국은 오도아케르에 의해서 멸망되었다. 동로마제국도 콘스탄티누스의 후손들에 의해 이어지다가 다른 핏줄에 의해서 여러번 왕조가 바뀌면서 새 천년을 맞이 하게 되었다.

서로마 제국 지역이 야만과 암흑에 허덕일때 동로마 제국은 찬연한 문명을 꽃피웠고 로마 제국의 후신으로서 당당하게 활동을 하였는데,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국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의도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수도를 빼앗기기까지 하였으니 유럽인들은 잇몸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의미를 전혀 몰랐을 것이다. 동로마 제국의 치세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면서, 소아시아에서는 새로운 세력들이 득세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7세기 이후에 맹렬히 성장했던 이슬람 세력이 소아시아에서 동로마제국을 완전히 몰아내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어떻게든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과 협력하면서 버티어 왔던 동로마 제국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메메드 2세에 의해서 결국 낙일하고 말았다. 이로써, 로마 문명은 크게 단절되어 버렸고 그리스 정교회는 로마의 카톨릭에 비해서 힘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낙일은 한편으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사실상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전에 동로마 제국 대다수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상징적인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동로마 제국 멸망 이후 많은 학자와 지식인이 이탈리아로 건너갔고 또 스페인까지 진출하여 신대륙 발견의 시초가 되었으며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지역은 20세기까지 암흑에 쌓일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이라는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 내기 위해서 방대한 자료를 찾았다. 실제로 읽어보면 저자가 꼼꼼하게 기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재미난 사실은, 앞으로 올릴 독후감으로 "전쟁 대행 주식회사"가 있는데, 그 속에는 용병의 역사를 서술한 내용이 있고 그 내용과 이 책을 연관시켜 보면 오스만 제국의 동로마 제국 정벌이 꼭 종교적인 이유라고 볼 수는 없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십자군 전쟁때부터 종교적인 이유라면 발벗고 나섰던 서유럽 제국과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도 유달리 이 전쟁에는 적극 참여 하지 않았다. 그 해답은 저 책에 있다. 단적으로, 콘스탄티노플 공략에는 오스만 제국군만 나섰던게 아니라 헝가리,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용병들도 참가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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