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수행 '마지막 경호원' 아내 조국 떠나려 위장재혼..유족 맞다"
1979년 10월26일 아침 남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당시 25살의 젊은 아내였던 양모씨에게 “VIP를 모시러 간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남편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원이었다. 남편은 이날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열린 만찬에서 대통령을 수행했다. 하지만 오후 7시50분 이곳에선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고, 양씨의 남편은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했다. 양씨는 당시 결혼 3년차, 갓 돌이 지난 아이가 있었다.
그 뒤 양씨는 억척스레 살았다. 그는 국가를 상대로 남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고, 현충원에 안장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국가는 양씨의 요구를 묵살했다. 조국에 실망한 양씨는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갈 계획을 세웠다. 영주권을 취득할 방법이 없어 미국 시민권자와 위장결혼까지 했다. 양씨는 198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양씨가 미국으로 떠난 지 10여년이 흘렀을 때 법이 개정돼 남편에 대한 국가유공자 신청, 보훈급여 수급의 길이 열렸다. 양씨는 2000년 남편을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고 보훈급여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 영주권을 아예 포기하고 아들과 고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난해 국가보훈처는 양씨에게 갑작스러운 통보를 했다.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이외의 남성과 혼인한 적이 있기 때문에 순직군경 유족 배우자라 볼 수 없다”면서 “그간 잘못 지급된 보상금 6200여만원을 반환하라”고 했다. 양씨는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양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이 열린 수원지법 행정1단독 이성호 부장판사는 문제가 된 양씨의 재혼을 위장결혼이라고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판사는 “양씨가 스스로를 여전히 경호원 남편의 부인이라 생각한 만큼 순직군경 유족으로 등록 신청한 것은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법률구조공단 측은 “행정기관이 수익적 처분을 취소할 때는 상대방이 받는 불이익과 비교해서 해야 한다”면서 “이번 재판을 계기로 보훈처는 잘못된 행정 관행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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