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남의 끝나지 않은 숙제 [인터뷰]

송오정 기자 2023. 3. 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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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남 / 사진=앤드마크 제공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배우 장영남은 95년 연극을 시작으로 여러 작품을 통해 대중을 만났다. 그가 대중에게도 제작자에게도 믿을 수 있는 '카드'란 사실은 그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과 크고 작은 캐릭터들이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영남은 여전히 '숙제' 중이다. 앞으로의 연기활동과 인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연기를 의심하고 계속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영남이다.

최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극본 양희승·연출 유제원)은 사교육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국가대표 반찬가게 열혈 사장과 대한민국 수학 일타 강사의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장영남이 분한 장서진은 유능한 변호사로, 자신의 자식들도 당연히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 이 같은 욕심 때문에 두 아들을 휘두르다 가정까지 위태로워지는 위기를 맞이하고, 종국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엔딩을 맞는다.

이러한 결말에 대해 장영남은 "행복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런데 겉으로 보기엔 완전하게 끝났지만 사실은 그 이후에 삶이 얼마나 많겠나. 우리에게 보이지 않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남편이랑 알콩달콩 살까?'란 생각도 들더라. 장서진의 성격상 아들을 이해하는 지점은 있지만 얼마나 속으로 끓겠나.(웃음)"면서 "그 이후에 '그들은 넷이서 행복하게 살았대요' 이건 아닐 거 같다. 남편과는 동지처럼, 친구처럼 평행선처럼 싸우지 않고 노력은 하면서 지낼 거 같다. 자식들도 '어떻게든 이해를 해봐야지(한숨 쉬는 시늉)'하면서 노력을 엄청 하면서 지내고 있을 거 같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장서진의 뒷이야기를 그려보기도.

사실 장영남은 작품 이름부터 '로맨스'가 들어가다보니 강인한 캐릭터가 혹여나 튀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내가 너무 센 게 아닌가? 깨끗한 물에 섞이지 않고 둥둥 뜨는 기름 같이 보이는 게 아닐까?" 계속해 고민했다는 그는 적정선의 톤과 감정선을 찾고 유지하는 것이 마지막까지 숙제였다고 털어놓았다.

작품에서 함께 연기하지 않았지만, 장영남의 연기를 보고 감탄했다는 정경호의 말을 전하자 장영남은 소녀같이 부끄러워하면서도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저도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많이 노력했다. 직접적으로 캐릭터가 망가지지 않으면서도 (녹아드는) 지점을 찾아야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조심스럽게 대본 위를 걸어왔다. 이 덕분에 자연스럽게 빌드업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대학로 이영애'(본인은 사색된 얼굴로 극구 부인했으나)라는 수식어를 가질 정도의 빼어난 미모에 연기력까지 갖춘 배우인데, '장영남표 로맨스'를 만들어보고 싶지는 않을까. 장영남은 "시켜주시면 뼈를 갈아서라도(웃음) 해보자 싶을 텐데 아직 제 로맨스는 연상되지 않으시나보다"면서 기회만 된다면 다양한 장르에 시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아들을 키우면서 작품을 통해 또 다른 두 아들이 생긴 장영남은 극 중 아들들과 호흡은 어땠냐는 질문에, 먼저 첫째 이희재 역을 맡은 김태정을 떠올렸다. "희재라는 캐릭터가 쉽지 않다. 선재네 집의 전사가 완벽하게 나오지 않아서 일정 부분 상상하면서 그림을 그려가며 해야 했는데 희재의 캐릭터 성향상 감정이 이미 쌓인 상태로 세트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그래서 (캐릭터처럼) 말이 없고 늘 그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하더라. 온전히 녹아들어 집중하려는 모습이 멋있더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둘째 아들 선재 역의 이채민에 대해 "선재는 되게 밝다. 자존감도 높고 씩씩하고 또 잘생기지 않았나.(웃음) 진짜 선재 같다"면서 "서로 불편한 거 있으면 얘기해 그랬더니 젊은 친구들은 선배라고 어려워하는 거 없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는 거 같다.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자신의 몫을 어떻게든 해내려고 자신에게 집중해 있지 주눅들어 있거나 그러지 않는다. 요즘 친구들이 가진 자존감과 자신감이 부럽더라"며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작품에서 처럼 실제 친아들과 갈등은 어떨까. 장영남은 입시나 공부 문제보다는 여성인 엄마로서 아들의 사춘기를 어떻게 보내야할지가 훨씬 큰 숙제라고 털어놓았다. "입시는 걱정도 아니다. 사춘기가 걱정이다"라며 "집에 아빠 말고는 남자가 없었어서, 아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춘기를 겪을지"라는 너스레를 떨기도.

극 중 장서진의 삐뚤어진 모정과 관련해, 장영남은 "자식은 내가 다룰 수 없는 또 다른 인격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부모로서 지식에게 '과몰입'하는 장서진에게 약간의 공감도 됐다고 말했다. 아직 10살밖에 안 된 아들을 보며 조바심을 느끼고 유치해지는 자신을 느꼈다고. "아이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작은 일에도 내가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더라. 조바심 나고 유치해지고. 어느 날은 잠도 안 와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었다. 거리를 둬야겠다 싶었다. 아이가 해결해야 할 몫이 있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맺은 인연 탓에 거절하지 못하기도 하고 좋은 작품으로 시청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매년 쉼 없이 작품 활동 중인 장영남. 그렇지만 '소모됐다'라는 생각이 그를 따라다녔다.

"어떻게든 극복하려했던 게 '끊임없이 의심하고 변화해야한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였어요. '아직 보여드리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보여드릴 게 이게 다는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벌써 다작배우가 됐지?'란 생각이 들어서 힘든 적도 있었어요."

40대를 그런 고민으로 보낸 장영남은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꿨다. 그는 "예전엔 연기를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 그 말을 무조건 따르려 했다면, 이제는 헤어·의상 등도 내가 스스로 체크하기 시작했다. 캐릭터의 사소한 변화나 감정 표현에 있어서도 조금 더 고민한다. 예를 들어 화를 낼 때 '이걸 이렇게 표현한다고?' 질문을 던져본다. '꼭 소리를 질러야만 진짜 화가 난 걸까? 화가 나면 오히려 참으려고도 하지 않나?' 이런 식으로"라고 했다.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해결한 작품은 바로 '사이코지만 괜찮아'였다. 당시 화장도 직접 했다는 장영남은 당시 맡았던 캐릭터가 큰 숙제였다고 고백했다. 극 중 주인공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종적을 감췄던 '엄마'가 사실은 바로 근처에 있던 '간호사 박행자(장영남)'였다는 반전 스토리가 후반에 드러나는데, 너무 큰 반전인 탓에 시청자를 설득시키지 못해 '초 쳤다'는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까 크게 걱정했다고. 그렇지만 어려운 '숙제'를 해낸 장영남의 연기력에 극찬이 쏟아졌고, 이 덕분에 장영남은 연기 고민에 대한 무게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40대 대는 고민이 많았어요. 뭔가 생각에 빠지면 한없이 밑으로 빠져버리고. 아직 극복하진 않았아요. 대신 그 과정을 '걸어가고 있어요'라고 얘기를 할 수 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거 같아요. 환경, 사건, 입장 등이 바뀌니까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 성장통을 겪는 중인 거 같아요."

장영남은 올해 생일을 지내면 만 나이로 50세가 된다. 50대에 들어섰지만 아직은 얼떨떨하다는 그는 지금의 경력에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길을 찾고 있었다. "이 빠른 세월 안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옛날엔 연기를 하면서 욕심도, 꿈도 있는데 그걸 이루지 못해 안달복달 난 적 있다. '왜 난 안 돼?' 이랬는데, 지금은 상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냥 '우리 아들 잘 키웠으면 좋겠다'란 생각도 든다"며 "그렇다고 열정이 없어진 게 아니라 더 침착하고 차분하게 더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걸 계속 내 쓰는 게 아니라 내가 갖지 않거나 몰랐던 내 안에 새로운 걸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는 고민은 더 커지는 거 같다"고 밝혔다.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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