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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일본에서는 초등학생 책가방 '란도셀'의 계절이 돌아왔다. 내년 4월 입학을 앞두고 1년 전부터 마음에 드는 란도셀을 사기 위해 학부모가 발품을 파는 이른바 '란활(란도셀+活)'이 시작된 것이다. 일부 고가 브랜드는 우리 돈으로 180만원이 넘어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15일 일본 TBS 방송에 따르면 일본란도셀공업회가 집계한 란도셀 평균구입 가격은 5만6425엔(54만원)으로, 2001년 대비 평균 2만엔 가량 올랐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구매한 가격대는 6만5000엔(62만원) 이상이었다.

장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이른바 ‘공방계’ 라 불리는 고가 제품들은 소가죽이나 말가죽 등 고급 재료까지 사용해 19만엔(183만원) 이상의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이런 비싼 가격에도 일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란도셀 구매를 위한 '오픈런'이 벌어지고 있다. 유명 란도셀 브랜드들도 이 수요를 겨냥해 오는 3월부터 8월까지 기간 한정으로 팝업스토어 오픈을 예고했다. 유명 브랜드와 협업한 한정 제품도 출시돼 방문 예약 등이 줄을 잇고 있다.

구입 시기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란도셀공업회는 “보통 입학 직전 해의 5월부터 8월까지가 가장 구입이 활발한 기간이지만 최근에는 3월부터 4월에 구입했다는 응답도 증가하는 추세”라며 “구입 시기는 해마다 빨라지는 추세로 열풍이 가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TBS는 이같은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저출산으로 한 아이에게 쓰는 금액이 늘어난 것, 그리고 원자재 가격 급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한 인터넷 매체는 “란도셀 구입 자금을 누가 대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절반 이상이 조부모라고 대답했다”며 부모, 조부모, 삼촌 등이 온 가족이 한 아이에게 모두 돈을 쓰는 ‘에잇포켓’ 현상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구마가이 도시히토 치바현 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학부모의 부담이 큰데 란도셀을 사는 문화를 고집해야 하느냐”는 게시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란도셀 구매열풍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아예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란도셀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공약으로 올리는 일도 나타났다. 이바라키현의 경우 44개 중 15개 읍면동에서 란도셀을 무료로 배포하는데, 히타치시의 경우 매년 1000개 안팎의 란도셀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오일쇼크 때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나눠주던 것이지만, 고물가에 해당 정책이 인기를 끌면서 다른 도시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무상 란도셀’ 지급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정치인까지 나왔다. 지난해 4월 사이타마현 지치부시 시장선거에서 "어른의 경제 격차를 아이에게 물려줄 수 없지 않다"며 란도셀 무상 지급을 공약으로 내건 키타보리 아츠시 현 시장이 당선됐다. 그는 당선 이후 실제로 지역 대상가정들에게 란도셀 구입비로 5만엔의 지원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고물가 상황에서 가계부담을 줄여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도레이 경영 연구소의 나가이 토모미 수석 애널리스트는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지난해 국민 생활 기초조사에서 학부모의 60%가 여유 없는 생활이라고 응답했다”며 “고물가 속에서 초등학생 책가방에 6만엔이나 들일 수 있느냐. 교육 현장이 학부모 부담 경감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