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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초/중/고 추천도서 > 대한출판문화협회/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올해의청소년도서 > 2008년 2분기 선정
고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한 『한 줄의 고전』. 이 책은 잘 알려진 고사성어 20개를 단순히 재해석한 게 아니라, 고사성어의 뿌리에서 시작해 우리의 문화·사회·역사·철학적 맥락에서 고사성어를 해체하여 설명한다.
저자는 유래를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사성어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멀쩡한 시공간 개념에 의문을 던진 아인슈타인이나 사물의 색과 형상을 어긋나게 표현한 고흐의 그림은 이런 일상적인 생각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며 새로움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결국 고전의 모든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또한 희망과 행복의 컬처 코드 스무 개를 통해 고사성어는 결국 문화와 사회, 자신을 속 깊이 돌아보고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비전을 위한 전략을 세우는 과정임을 알려준다.
☞ 이 책은 C & M 에서 방송됐던 내용 중 일부를 뽑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작가정보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소강절의 선천역학과 상관적 사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학의 한계를 넘어선 그의 관심은 불교의 심리학, 기의 자연학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서 과학에서 철학으로, 외래학에서 한국학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기의 자연학에 대한 연구는 자연스럽게 동아시아의 철학적 사유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면서 현재 동양학 및 한국학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연구는 현재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하나는 한국학(동양학)의 귀한 자원을 보편적 학문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인문학이 좀더 대중적으로 소통될 수 있도록 TV 강의나 관련 컨텐츠 개발에 주력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고전학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상의학〉 〈세계의 고전을 읽는다〉 (공저, 휴머니스트) 〈20대에 읽어야 할 한 권의 책〉(공저, 책세상) 등이 있고,옮긴 책으로는 〈동무유고〉(청계) 〈황제내경〉(책세상) 〈음양과 상관적 사유〉(공역, 청계) 등이 있다.
그림/만화 김미진
목차
- 프롤로그
1. 새로움의 비밀 - 기우
『열자』라는 책, 유학과 도가/기나라 사람은 바보?/친구의 설명/기氣/장려자의 생각/열자의 생각/우리의 생각/그런데 정말 하늘과 땅은 무너지거나 꺼지지 않을까요?
2. 빅뱅과 빅크런치 - 천지개벽
코스모스와 유니버스/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인간의 역사와 운명/알기는 소강절/동양의 우주론은 크기가 너무 작아요/우주를 바라보는 변함없는 인간들의 생각
3. 빈자리 만들기 - 혼비백산
정신/귀신/기와 혼백/정신과 육체/죽으면 뭐가 어떻게 되나요?/미디엄/제사를 지내는 이유/얻으려거든 내주어라
4. 별들에게 물어봐 - 태두
가장 뛰어난 인간/대 문장가 한유/산, 하늘과 가까운 곳/태산과 신령스러운 산들/북두/하늘의 제국/태극/별과 산, 인간
5. 두 극단 사이에 난 길 - 무용지용
쓸모의 역설/귀신같은 사람/장자의 세 가지 언어/목수와 엄청나게 큰 나무/꿈에 나타난 상수리나무/무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무용한 놈을 잡아!/무용과 유용, 그 사이에 난 길/도의 이름으로
6. 마이 리틀 월드 - 정중지와
용의 수염/네이처와 피시스/무위자연/물의 신들/외다리 짐승과 노래기/거북이, 개구리를 놀리다/저마다의 세계, 니들이 개구리 심정 알아?
7. 생명의 양식 - 조장
자라지 않아도 될 것들/대장부/용기란 무엇인가, 세 명의 인물/맹자의 사상, 성선설과 성오설/호연지기/사림, 선비의 숲/선비 정신
8. 내 삶의 주인은 나 - 내성외왕
한자 문화권의 독특한 사상은 뭔가요?/내성외왕/수기치인/철인정치/근대의 국가/전륜성왕/왕중왕/단군왕검/민주주의와 내성외왕/성인과 왕, 내 삶의 주인은 나
9. 청아한 무상 - 세한송백
소나무와 잣나무/지조/세한도/김정희, 호가 수백 개나 되는 사람/추사와 실학/사통팔달 추사/스승과 제자/청아한 무상/추사의 흔적들/잘 모르는 게 정답?
10. 막 가자는 건가요? - 이판사판
이쯤이면 막가자는 건가요?/이판사판과 불교/화엄 불교/영원의 세계와 변화의 세계/끝없이 연결된 세계/이판승과 사판승/불교의 슬픈 역사/이판사판
11. 탐욕스러운 고양이 - 흑묘백묘
동충하초/파란만장한 중국의 현대사/중국의 내전과 6?25전쟁/모씨와 등씨/문화대혁명/천안문 사건/팍스 시니카의 영광/탐욕스러운 고양이
12. 글로컬리제이션과 로발리제이션 - 신토불이
몸과 마음, 그리고 흙/언제 생겼나요?/일본식 말 아니에요?/문화의 저력/우루과이라운드/FTA/글로컬리제이션/로발리제이션
13. 사랑과 야망 - 이순
어린이를 가리키는 말들/나이와 배움/지우학/이립/불혹/지천명 또는 지명/이순/황희의 깨달음/종심/사랑과 야망
14. 숨어 버린 유토피아 - 무릉도원
도화원기/낯선 세계/난리를 등지고/동굴의 문은 닫히고/술꾼 시인/복숭아꽃의 상징/무릉도원은 어디로 숨었을까?/동굴의 입구에서
15. 고기가 사는 맑고 푸른 내 삶 - 청수무어
물이 맑으면 고기가 없다/선배의 충고/어부의 노래/순수한 사람들/순수의 악마/조화는 요리의 지혜
16. 재테크의 비밀 - 자린고비
짠돌이/자린고비와 비슷한 말들/자린고비 이야기 하나, 절인 고비/자린고비 이야기 둘, 존경받는 부자/자린고비 이야기 셋, 재테크의 비밀/자린고비의 설화들/짜다의 문화/짜지만 나눠먹는다
17. 독서와 편서 - 위편삼절
위편삼절과 공자/편과 책/한 권 두 권/종이와 책/인쇄술의 발전/새로운 개념의 책/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책/독서와 편서/끈을 다시 묶는 공자
18. 인생은 시험 - 압권
책을 누르다?/과거제도/근대 세계와 과거제도/춘향전과 이몽룡/문과, 사마시/생원과 진사/장원급제/인생은 시험/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험
19. 저주받은 물고기 - 목탁
목탁들/공자는 목탁이오!/목탁의 쓰임/저주받은 물고기/목어와 목탁/사물/사물놀이/목탁 소리
20. 짱돌 부처 - 천의무봉
꿰맨 자국이 없는 옷/인간과 선녀의 로맨스/천의무봉을 볼 수 있을까?/석굴암과 석불사/짱돌 부처/불교의 판테온/지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법신과 색신/석굴암의 부처님/악의 무리를 쓸어버리는 한줄기 빛/석굴암 여행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고사성어에서 찾아낸 희망의 컬처 코드 스무 개
우리시대, 우리 감각에 맞게 고사성어 다시 읽기
‘자린고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이고, ‘기우’는 창조성의 비밀이며, ‘정중지와’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세상을 말하고, ‘이판사판’은 우리가 꿈꾸는 세계라고?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일까?
우리시대 우리 감각에 맞게 고사성어 스무 개를 다시 읽었다. 단순히 재해석한 게 아니라, 고사성어의 뿌리에서 시작해 우리의 문화·사회·역사·철학적 맥락에서 고사성어를 해체하여 재조합했다. 저자에 따르면 고사성어에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문화유전자에 차곡차곡 쌓인 지혜가 압축되어 있다. 저자는 이 압축을 풀어 희망과 행복의 컬처 코드 스무 개를 찾아냈다. 그리하여 우리의 문화와 사회를,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속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에서는 각 고사성어마다 내용이 함축된 삽화를 삽입해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었고, 방송 강의안을 기초로 했기 때문에 재치 있고 날랜 입담이 살아 있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 고사성어 - 우리 몸속 문화유전자
“또 고사성어?”가 아니다. 저자도 집 위에 집을 또 짓는 거였다면 애초에 이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거라 말했다. 고사성어를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복원된 것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연결하는 것, 그리고 이를 활용해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것 들이 이 책을 쓰는 목적임을 저자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고사성어를 복원한 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지식정보시대에 왜 고사성어인가? 인생은 고속도로와 달라서 정해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길이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자의 상황에서 필요한 게 단순정보라면, 후자의 상황에서는 지혜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공자왈 맹자왈도 있고, 불경과 성경 같은 고전도 있는데 왜 하필 고사성어인가? 첫째, 압축률 때문이다. 위대한 사상가의 글들은 한 줄 한 줄에 그 책의 모든 내용이 다 들어 있다. 고사성어는 거의 대부분 딱 네 음절의 말이고, 어떤 경우에는 두 음절로도 충분하다. 그 안에 수많은 이야기가, 역사가, 생각이 담겨 있다. 너무도 작아 “목에 걸고, 팔목에 차고,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을 정도다.
둘째, 그 압축률 덕분에 고사성어는 늘 우리의 입 언저리에 산다. 유명한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려면 책을 읽고, 기억 또는 기록하고, 확인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고사성어는 그냥 쓰기만 하면 된다. 생활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지 않고 땅으로 내려와 우리와 함께하는 말이다. 그래서 늘 살아 움직이며 과거의 유산 속에 우리의 새로운 현재들을 계속 담아낸다. 우리 몸속 문화유전자와 같다.
저자와 함께 고사성어를 다시 읽어보자.
* 기우 - 창조성의 비밀
우리가 ‘기우’라는 말을 꺼낼 때 우리 맘속에는 대개 우월의 감정이 싹튼다. 상대방의 걱정을 ‘쓸데없는 생각’ 정도로 치부할 때 ‘기우’라는 말을 내뱉기 때문이다.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 중국의 기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을 걱정했다. 친구의 근심을 들은 한 친구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논리를 폈고, 장려자라는 인물은 하늘과 땅도 언젠가는 무너질 거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열자는 인간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지 알 수 없다며 괜한 걱정으로 몸을 상하는 일이 없도록 당부했다. ‘기우(杞憂)’는 이 걱정을 한 ‘기(杞)나라 사람의 근심(憂)’을 뜻한다.
그런데 왜 하필 기나라 사람일까? 기원전 12세기 무렵, 주나라가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기나라는 은나라 유민들이 사는 작은 나라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던가. 주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기나라 사람들을 조롱거리로 삼아 ‘바보’로 여겼다 한다. 알고 보면 ‘기우’에는 역사의 슬픈 진실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기우가 쓸데없는 생각일까?’ 저자는 상대성이론을 발표해 뉴턴의 고전역학의 패러다임을 뒤엎은 아인슈타인, 고흐와 고갱처럼 사물을 재현하는 예술을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예술가들을 떠올린다. “창조는 안락과 행복 속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창조와 같은 탄생은 늘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기우에 사로잡힌 사람도 옳지 않습니다. 걱정과 불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열자도 부분적으로만 옳습니다. 우리가 새로움을 창조하려면 기우가 필요합니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고 그것을 해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정중지와 - 행복한 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 개구리”는 자기가 아는 것만이 전부인 줄 알고 뻐기는 사람을 비아냥거릴 때 쓰는 말이다. 개구리가 거북이 앞에서 우물을 자랑하며 뽐내자 거북이가 바다를 이야기하며 개구리의 기를 팍 꺾어놓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독선에 빠지지 말고 넓은 세상을 보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쓸 때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개구리의 우물을 얕잡아보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개구리와 마찬가지로 자기 세계에만 빠져 있을 혐의가 짙다. 갑이 걷기를 예찬하자 을이 자동차를 말하며 갑을 우물 안 개구리에 비유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갑의 말이 옳기만 할까? 자동차는 더 넓은 세계를 빨리 돌아보는 데 유리하지만 좁은 논둑을 지나는 데는 걷는 것만 못하다. 어디 그뿐인가 자동차는 자연을 보존하는 데 있어서는 자전거에 못 미친다. 세상사는 이렇게 빛과 그늘이 늘 함께한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되 작은 세계들의 가치를, 맡은바 자리에 충실한 것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강아지 똥’도 쓰임새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말할 필요 있겠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우물 안 개구리를 점잖게 타이르되 그 우물만은 인정하는 것, 그리하여 각자가 자기의 가치를 긍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를 통해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것 아니겠는가. 이럴 때 진정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 이판사판 - 우리가 꿈꾸는 세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뱉는 말이 있다. “이판사판 될 대로 돼라!” 여기서 ‘이판사판’은 ‘이번 판은 죽을 판’ 정도로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이판사판은 理判事判으로, ‘이(理)와 사(事)로 나뉜 세계’를 뜻한다.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의 세계’는 ‘원리의 세계’이다. 원리는 변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의 세계’는 ‘영원의 세계’이기도 하다. 반면 ‘사의 세계’는 ‘일의 세계’, 일은 늘 변하므로 곧 ‘변화의 세계’다. 불교에서는 이와 사를 둘로 보지 않는다.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인 세계, 바로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가 불교의 가르침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영원의 세계만을 참된 세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변화하는 일의 세계, 시간의 세계를 돌아보지 않아 세계의 다양성을 놓치고 만다. 이들은 변화하는 시간의 세계 속에서 이 영원의 세계가 가진 이념을 보존하려 한다. 그래서 변화와 개혁을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영원의 완전함 속에 새로움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일과 시간의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이 영원의 세계를 모르면 눈앞에 있는 그대로의 것만을 참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세상의 변화무쌍함은 풀리지 않는 의심과 회의를 키우며, 이는 허무주의로 귀결되기 쉽다. 이사무애법계는 이러한 양 극단을 경계하고, 이의 세계와 사의 세계, 그리고 세상만물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을 바탕으로 자기 외의 다른 존재들과 협동하며 조화롭게 사는 세계다.
이 불교가 조선시대에 핍박을 당했다. 숭유억불의 풍조 아래 스님들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야 했다. “이판승이 되나 사판승이 되나, 중놈의 인생 이젠 다 되었다!” 자조적인 탄식이 이판사판이라는 말에 스며들었다. 여기에 사판승보다는 이판승을 더 높게 치는 우리나라 불교의 성향이 더해져 이판승은 절의 살림을 돌보는 사판승을 무시하고, 사판승은 살림을 무시하는 이판승을 비난하는 판세가 형성되었다. 더욱이 일제시대에 들어온 대처승(결혼한 승려) 문화를 일본 문화라 여겨 배척하는 풍조가 더해졌고, 어두운 역사 시기에 절로 피신한 불량한 승려들이 칼과 몽둥이를 들면서 이판과 사판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이렇게 이판사판은 원래의 뜻에서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 말에는 불교 철학의 제일가는 장점인 관계에 대한 깊은 생각이 들어 있다. 내가 있다는 것은 이미 나 아닌 다른 것들이 먼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나 아닌 다른 것들이 맺는 관계를 깊이 성찰하는 세계, 이것이 이판사판의 세계이다. “언어의 혼란은 생각의 혼란이고, 그 생각이 생긴 삶의 세계와 역사의 경험이 거친 혼란 속에 있었음을 반영합니다. 불교가 고난을 대신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이판사판의 세상’이 다시 되어야 합니다.”
* 자린고비 -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영웅
“프락서노서나이히러피러피케이션floccinaucinihilipilification” 『고우영의 삼국지』에 나오는 영어 단어이다. 만화책을 보던 저자를 깜짝 놀라게 한 이 단어의 뜻은 ‘부란 뜬 구름 같은 것’ ‘재물에 대한 경시’였단다.
구두쇠의 대명사 ‘자린고비’에 얽힌 여러 이야기가 있다. 우선 자린고비가 한자말이 아니란 것을 알아두자. 이야기 하나, 충북 충주에 살았던 ‘고비’라는 사람이 제사에 쓰는 지방을 오랫동안 쓰기 위해 기름에 ‘절여’ 썼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 고비를 ‘절인 고비’라 불렀고 여기서 ‘절인’이 ‘자린’으로 변화해 ‘자린고비’가 되었다. 이야기 둘, 충북 음성에 살았던 조륵이란 사람이 재물을 풀어 선행을 베풀며 살다 죽었는데 사람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이름이 慈仁考碑(자인고비: 어질고 자애로움을 기리는 비)이다. 자린고비의 색다른 유래이다. 이야기 셋, 충북 충주에 ‘고비’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얼마나 모질게 재물을 아껴 모으는지 배가 고파 양식을 몰래 먹은 일로 식구들에게 몽둥이찜질을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야기 넷, 천장에 굴비를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가락에 굴비 한 번 쳐다보았다는 유명한 옛이야기.
날이 풀리면 겨우내 맛나던 동치미 국물 위에 거품 모양의 점성을 띤 흰 소금기가 생긴다. 김치에도 같은 게 생기는데, 이를 ‘곱’이라 한다. 곱이 생기면 동치미든 김치든 짜서 더 이상 못 먹는다. ‘절인 곱’은 ‘짜디짜서 썩어 문드러졌다’는 뜻 아닐까? 맛있는 동치미와 김치가 짜서 못 먹는 음식물 쓰레기가 되기 전에 나눠 먹는 게 더욱 아끼는 태도일 것이다. ‘절인 고비’처럼 종이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되 식구들에게 몽둥이찜질을 하는 고비처럼 사는 일그러진 영웅은 되지 말기. 자린고비의 유래가 자인고비가 될 수 있도록 하기. 김치는 꼭 나눠먹기. 이것이 우리시대에 자린고비를 새롭게 읽는 방법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52208156 |
---|---|
발행(출시)일자 | 2008년 03월 20일 |
쪽수 | 411쪽 |
크기 |
153 * 224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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