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패권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백악관을 분노케 만드는 위성채널.
중동 문제를 제대로 읽는 또 하나의 거울, '알자지라'의 진짜 모습을 만난다.

일부다처제를 비롯한 코란의 폐해를 놓고 공개 토론하는 등 이슬람의 전통문화에 도전하는 토크쇼.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 현장에서 스포츠 중계하듯 전투 장면을 생중계 하는 특파원. 서방 지도자를 카메라 앞에 세우고 혹독한 질문 공세를 펼쳐 궁지에 몰아넣는 앵커……. 아랍 대중들을 사로잡는 파격적인 프로그램으로 CNN과 쌍벽을 이루는 위성 뉴스채널로 급성장한 알자지라는 이제 중동을 읽는 거울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알자지라는 아랍 각국의 왕가와 집권자로부터 가장 배척당하는 방송사이다. 아랍은 전통적으로 빈부 격차가 극심하고 언론 자유가 극단적으로 억압되는 폐쇄사회로, 알자지라가 아랍의 대중들로부터 사랑 받으며 자유 언론의 심볼로 주목받는 것은 이슬람의 절대 권위와 지배계급의 아성에 도전하는 이단자로서 위정자들의 미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이 책은 알자지라의 탄생 배경과 지배 주주인 카타르 국왕의 야심, 미국과 아랍 각국 정부의 간섭에 당당히 맞서는 언론사로서의 용기, 각각의 프로그램들이 아랍 사회에 끼치는 영향, 그리고 텔레비전 화면 안쪽에 도사린 문제들을 추적하고 있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사회의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보도의 장막에 가려진 오늘의 아랍 문제들을 제대로 살피게 하는 유리창 구실을 한다.

본문 중에서 :
일부 아랍 국가의 정부 관리들은 심지어 이 방송의 프로그램들이 적정한 수준 이상으로 아랍의 민감한 문제에 흠집을 내면서 각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아랍 국가들이 알자지라로 인해 야기된 명예훼손과 국가 이미지 실추, 또는 상처받은 감정 등에 대해 하루라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켄터키 대학의 국제교류학 교수이자 중동의 방송매체 전문가인 더글라스 보이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마도 알자지라가 가져온 가장 큰 충격은, 정치 지도자들이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미디어에 의해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부패, 정치적 의지의 부재, 이슬람적인 보수주의, 민주기구의 결여 등이 이제는 도마 위에 올랐다."

알자지라는 아랍의 전통적인 견해에 맹종하기를 거부하는 비판정신 때문에 아랍 전역에서 다른 텔레비전 방송사들과 뚜렷이 구분된다. 아랍의 모든 방송사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에 하나의 목소리만을 반영하지만, 알자지라는 그동안 금기시 되어 왔던 이스라엘의 고위 관리와 인터뷰한 내용까지도 방송할 정도로 개방적이다. 알자지라는 아랍 세계를 지배하는 권위적인 체제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비판을 가한다.

알자지라는 서방 세계에서조차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이에 대해 미국은 심한 불쾌감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이 방송국이 미국이 수행하는 대 테러 전쟁과 관련해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옹호하는 선동적인 문구를 의도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탈레반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에 알자지라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방송사들의 접근이 금지되면서 이 조치에 대한 비난이 알자지라에 집중되었다.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에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과 탈레반의 종교적 중심지인 칸다하르에서 생방송으로 뉴스를 보도하는 유일한 방송은 알자지라뿐이었다.

이 방송국은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아랍의 근본 원칙에 대한 도전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다. 섹스, 일부다처제, 정부의 부패, 여성의 참정권, 그리고 이슬람교 원리주의 등에 대한 보도가 그것이다. 더군다나 이 방송사는 아랍 방송사로서는 최초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하여 충격을 던졌다. 심지어 가장 적대적인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여 악명이 높았던 이스라엘 전 수상인 에후드 바라크도 알자지라와 인터뷰를 했다. 이런 보도 태도는 자연히 그동안 언론을 강력하게 통제해 왔던 아랍의 지도자들을 분노케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제기된다. 오사마 빈 라덴은 왜 하필 알자지라를 선택했을까? 이것은 세계 최대 미디어 그룹을 이끌고 있는 미국에게 있어서는 9.11 테러만큼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오사마 빈 라덴의 주도면밀함이 있고, 알자지라의 존재 가치가 있음을 미국이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사마 빈 라덴은 이 비디오 테이프로 미국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지만, 또 하나 명백한 것은 이 비디오 테이프가 전 세계 이슬람 사람들을 향한 장렬한 선언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슬람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자기 고백서를 한 치의 왜곡도 없이 전해 줄 수 있는 기회와 장치를 찾고 있었고, 눈을 들어 보니 지척에 알자지라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한 알자지라의 보도 방식에 불만을 표시한 것은 언론 자유를 옹호하는 다른 방송사들의 비난을 초래했다. 그들은 미국의 처사가 아랍권 대중매체 가운데 가장 독립적인 방송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알자지라의 실질적인 경영 책임자인 알알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언론의 독립을 배웠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우리가 그들에게 배운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이번 전쟁의 다른 한 축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반드시 보여 줘야 하는 중요한 대상 인물이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있어, 양쪽 모두를 보도하지 않고 어떻게 균형 있는 뉴스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